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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협동조합을 찾아서] 한국산업제조유통 협동조합
작성자 : 전미나(123.212.119.204)
등록일
: 2020-12-14
조회수 : 3099
내 옆을 돌아 볼 수 있는 삶
이곳은 중앙시장에 있는 공구 골목을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많은 단지가 모여 있어 위치를 헷갈리지 않게 단지 건물 맨 위쪽엔 동 호수가 적혀있다. 단지는 18동까지 있다. 길을 찾아가는 동안 도보에 딱 붙어 가야 한다. 도로엔 수시로 트럭이 오고 간다. 건축에 필요한 공구를 싣고 오가는 트럭이 많다. 대전 대덕구 대화동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 한강 이남에 있는 큰 공구상가로 소위 ‘대전의 청계천 공구상가’라고도 불린다. 이 수많은 단지 중 14동에 있는 ‘한국산업제조유통 협동조합’을 찾아갔다.
▲ 대덕구 대화동의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끼리
“사단법인 한국산업용재협회라는 곳이 있어요. 전국에 회원이 5~6천 명 정도 되는 규모 있는 단체죠. 본부는 서울에 있고 각 지역별로 지구가 나눠 있었어요. 저도 소속되어 한때 지회장을 맡기도 했죠. 하지만 지회장을 맡고 일하면서 한국산업용재협회의 방향이 대전에 있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자주 느꼈어요. 회비는 꾸준히 냈지만 그에 맞는 이득을 얻긴 어려웠죠. 회원 대다수가 서울에 있다 보니 정책도 서울에 맞춰 가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가 내는 의견은 반영되는 느낌이 없었어요.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우리 지역에서 우리끼리 우리를 위한 단체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한국산업제조유통 협동조합 이보선 이사장은 지역에서 지역 상인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서로 일하며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고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은 함께하고 싶었다. 또 대전에 있는 기업을 상대하며 물품 거래량도 늘릴 계획으로 시작했다.
“연말에 기부 행사를 했어요. 아직 협동조합을 설립한 지 오래 안 되어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진 못했지만 이번엔 조합원끼리 돈을 모았어요. 이곳 대화동에 독거노인이 많거든요. 대화동 부녀회에 전달해 김치 나눔 봉사에 힘을 보탰죠. 우리도 대화동에 속해 있으니 마을 주민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한국산업용재협회에 있을 때도 지역 봉사를 많이 하고 싶었지만 조금 한계가 있었죠. 협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하니 더 자유롭게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았어요.”
현재 한국산업제조유통 협동조합 조합원은 70명 정도다. 조합원 대부분은 산업용재유통단지에 많이 모여 있다. 협동조합은 2019년 12월에 만들었지만, 소속 조합원들은 20년 전부터 함께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다. 산업용재유통단지가 생긴 지 이제 23년이다.
▲ 한국산업제조유통 협동조합
신뢰 속에서 모두 함께 바꿔가는 우리
“우리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 뒤에 산이 있어요. 이번에 조합원들이 약 1억 원 정도 돈을 모아서 대화동 주민과 함께 공원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조합원들 사이에 오랫동안 쌓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예전엔 그냥 허허벌판이었죠. 이곳에 나무도 심고 연못도 만들었어요. 체육 시설도 만들어서 동네 주민분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고요. 이곳 유통단지에 있는 분들도 점심 먹고 올라가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해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잖아요.”
서로 자기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옆 사람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보선 이사장은 말한다. 단지 뒷산에 공원을 만든 것도 서로 나누고 옆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와 구심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산업용재유통단지 뒷산에 오르는 입구엔 ‘대전산업용재체육공원’이라고 적었다. 나무 계단이 조성되어 있어 올라가 보니 산업용재유통단지가 훤히 보인다. 연못도 보이고 평평한 곳엔 족구장도 만들었다. 공원은 지금도 조금씩 만들어가는 중이다. 함께 마음을 모아 공간을 꾸미고 생활 문화를 바꿔 간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 대화동 주민들과 만든 대전산업용재체육공원
조합원들의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책자와 홈페이지도 기획 중이다. 아직은 각자 해야 할 일이 많아 구체적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홍보 책자를 만들게 되면 협동조합도 더 많이 알리고 이곳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시장은 계속 대형화 기업화되고 있다. 소규모 업체는 점차 사라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규모 업체도 서로 뭉치면 하나의 거대한 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고 이보선 이사장은 생각한다.
“이곳에선 단순히 공구만 파는 건 아니에요. 전자, 기계 관련 물품이 있고 가공과 조립도 가능한 곳이죠. 다양한 것이 많아요. 그렇기에 우리가 함께 이곳에서 뭉치면 아무리 큰 기업과 경쟁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요소가 있으니까 고객 입장에서는 편리할 수 있죠.”
이보선 이사장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건 어쩌면 뒷산에 공원을 만든 것이 서로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 신뢰로 함께해 온 이웃이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보선 이사장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
“일하면서 협동조합 운영도 신경 쓰려면 쉽진 않죠, 하지만 애정이 있어요. 저는 1997년도에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원래는 기계 제작 일을 했었죠. IMF 때 사업을 시작했으니 정말 힘들었죠. 영업할 줄도 모르고 아는 것은 많이 없고 기반이 없어 정말 힘들었죠. 그때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렇게 일을 해왔어요. 일은 서로 도우며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저도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싶은 거죠.”
최근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젊은 팀이 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많이 돕진 못해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알려 준다. 남을 도울 때 보람을 느낀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도 남을 도와주는 것도 내가 받았던 만큼 다시 돌려주는 거라 생각한다. 이보선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협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은 어쩌면 나 또한 그렇게 도움을 받았던 따뜻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